210601 비전공자 스타트업 1년 6개월 즈음의 회고
비전공자 스타트업 1년 6개월 차 일지
아직도 입사하고 초기에 코드를 분석하던 날들이 생생하다. 모두가 친절하지만 정리된 것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
bitbucket에서 master브랜치를 땡겨받아 열심히 적어가며 분석한지 3일 째, master 브랜치는 최종이 아니고 dev가 최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때,
탈출을 강행했다면 지금 다른 개발자가 되어 있을까? (하하)
바닐라 자바스크립트가 주력이었고, Vue.js를 약간 할 수 있었지만 회사가 요구한건 Jquery로 되어있는 레거시 코드와 React.js로 마이그레이션..
전임자가 약속된 날 퇴사하고 혼자서 모든 걸 해야했다.
신입 개발자가 입사 후 한 달만에 배포도 직접하는 회사… 그 때, 탈출을 강행했다면..? (하하)
정말 열심히 했다. 내가 개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너무 기뻤기에 하자는대로 다 했다. (예를 들면, 이틀 만에 페이지 하나를 개발해주세요 라던가..)
대부분의 개발자가 그렇겠지만, 특히 “비전공” 개발자인 경우 참 열심히 공부한다.
나조차도 개발을 시작하고 갖고 있던 취미가 모두 개발로 대체되었고, 퇴근 후에도 개발을 공부하는 삶이 너무나 당연했고, 약간 지쳐갔다.
매일 소화가 안되고, 예민해질 무렵, 위염과 알러지로 찾은 병원에선 의외로 퇴근 후에 일을 하지 말라는 처방을 내렸다. 회사에서도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 때 개발을 공부한 지 2년여 만에 처음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쉬어버렸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역시나 노는 게 제일 좋아-! 퇴근 후 쉬는 것에는 아주 금방 적응해버렸다.
어쩌면 그 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어딘가에서 생긴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비전공자” 개발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매일 스스로에게 ‘내가 개발이 맞는걸까?’를 묻게된다.
그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온갖 컨퍼런스, 블로그 글들을 찾아다니고 일단 새로운 지식을 머릿 속에 넣고 나면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된다.
내일은 좀 더 나은 개발자가 되어있겠지,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나도 그랬지만, 이 조급함은 나를 더 나은 개발자로 만들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신경 쇠약한 개발자로 만들어줬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1년 반 정도 개발자로 일한 결과,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배움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나야 체득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시간.
개발을 처음 시작하고 꽤 오랜 시간 개발자들 특유의 건방진 태도가 싫다고 하고 다녔다. 다른 사람 코드를 까는데 바쁘고, 오만하고 무례할수록 실력있는 개발자 취급을 받는 것이 “그들의” 문화라고 여겼다.
최근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나의 밑밥깔기 태도(내가 모르는 게 아니라 쟤네가 나쁜거야)가 스스로 확신이 없는 것을 가리기 위해,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라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개발자가 되려고 한 이유 중 하나가 항상 공부해야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개발 문화가 좋아서 였는데 말이다.
개발을 처음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여기저기서 탈락하며 힘들었던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말들은 이런 말들이었다.
“완벽한 이해보다는 어제보다 오늘 하나 더 배우고 익혔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수련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림이 그려지는 날이 올거예요.” - 두루님
“저는 웹개발이 가장 값싼 출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한 것을 바로 만들어낼 수 있잖아요.” - 컨퍼런스에서 만난 어느 개발자분
“내가 개발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 새라
좋은 분들이 주변에서 도와준 덕분에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넌 개발이랑 안 맞아. 찐개발자는 아니야. 라고 굳이 ~~ 말해주는 분들이 계시다. (아니, 내가 하겠다는 데 왜 난리야 다들)
이젠 그런 말들을 들어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개발이 재밌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고, 이제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1.5막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2막을 향해 가보려고 한다.
그러니 괴로워하는 비전공자 개발자들이여, 너무 슬퍼마세요.
개발이랑 맞는지 안 맞는지는 알아서 결정할테니, 조용히 지켜봐주시라 말합시다.
그리고 내가 개발을 좋아하는지 알아볼 충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줍시다. 천천히 차근차근, 꾸준히 꾹꾹.
모두가 몸과 정신이 건강하게 개발하기 바라며,